하나님은 어디에?

 

지독히도 교회에 가기를 거부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늘 하나님은 없다고 외치며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으며 살라고 주장하며, 주일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를 전도하고자 그의 아내와 어린 자녀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런 식구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에 가는 집안 식구들을 난폭하게 대했고  특히 주일날이 되면 이런 저런 핑계로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구실을 만들어 식구들을 난처하게 만들곤 하였다.

 

이런 그가 어느날 심한 소화 불량에 걸린 것 같다고 불평하며 병원을 찿았다.  진료를 받은 결과, 위암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길어야 6개월 이상을 살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처음에는 앞이 무너지는 것 같이 절망했으나 정신을 추스리며 자신의 힘으로 병을 이겨 나가겠다고 유명한 자연식이나 식이 요법등으로 자신의 병을 이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독려하곤 했다.  그러나 이미 깊어진 암세포의 확장으로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 결국에는 병원에 입원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한편 그의 아내와 집안 식구들은 죽음 직전에라도 그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밤낮을  울며 기도했고 , 그런 아내의 정성을 아는 교회의 성도들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자 그의 병실을 방문하여 찬송가와 성경 말씀을 그에게 들려 주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찿아오는 교회의 성도들을 체면 치레로 맞던 그가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을 더 이상 찿아오지 말라며 자신의 병실에 크게 “God is no where!” 란 글을 써 붙였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찿아 오지 않는 자신의 병실을 지키며 생존을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 볼수 없을까를 궁리하던 그에게 마침 늦둥이 막내 아들이 찿아왔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 글을 배우기 시작한 다섯살 짜리 꼬마 아이가 아빠가 벽에 써 붙인 글을 떠듬떠듬 읽기 시작했다.  “God is now here!”이라고 말이다. 아들의 글 읽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그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들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이라고 읽었어?”  이렇게 묻는 아빠에게 꼬마 아들은 자신이 잘못 읽었다고 추궁 당할 것을 걱정하는 듯, 동그랗게 큰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또박 또박 “God is now here!”라고 읽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의 막내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릅을 꿇고 회개했고 결국에는 영혼의 구원은 물론 육신의 치유함 또한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을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계셨고, 지금 우리와 동행 하시며, 앞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실 하나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리을 가리려고 하지 말자.  진리는 영원하기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 라고 스스로를 천명하신 예수님을 믿기 바란다.  요한복음 18장 7절의 말씀 처럼 예수를 누구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란 뜻을 이해하기 바란다.

 

진리를 들어도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여러번 반복하여 강조하셨던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되어 늘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