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예수님은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교회를 생각하면 기도하는 곳이구나라고 여겨야 된다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마태복음21 13)

기도의 중요성

   기도만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기도해야 영적으로 산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고만다. 그러므로 기도만큼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말씀도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지식에만 머무르고, 생명력이 없는 삶을 가져온다. 자연스레 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능력이 없고, 속에 열정이 없으니 이제 겉으로 폼만 잡는 것이지 실제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려고 하는 능력있는 삶이 점차 실종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누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기도해서 생긴 것이다. 기도하지 않았는데, 그냥 우연히 생겼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기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도를 시키시고, 그리고 무엇인가를 행하고자 하신다. 기도가 없이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 말라. 기도없이 진행되는 것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아마 무수히 체험하고 체험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기도가 쌓아진 것들을 통하여 일하시며 행하신다. 그러므로 기도가 많이 쌓이고, 쌓인 것들은 하나님의 큰 역사를 드러내곤 한다. 중요한 기도일 수록 기도를 쌓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매우 중한 기도제목이 단숨에 응답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속에서 기도가 충분히 쌓인 것이다.

기도에는 분량이 있고 중량(짐)이 있다

   예수님을 처음 믿으신 분들 가운데, 시험과 환란이 많은 경우도 이에 속할 것이다. 아직 땅이 많이 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고, 험한 인생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들이 기도를 많이 쌓았거나, 당사자가 기도를 충분히 하였다면 그만큼 일이 수월하고 형통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기도제목을 목회자에게 알리고, 성도들과 나누며 나를 인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되어 함께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기도제목을 알려야 한다. 기도의 짐을 혼자 지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때로는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세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기도의 팔을 들고 있을 때, 아론과 훌이 와서 모세의 양팔을 붙들고 함께 기도한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애굽기 17 12)

   또한 신약에서는 한 중풍병자를 침상째 메고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네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예수님께 올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영적으로 볼 때, 그를 위해 중보기도를 한 것이다. 당사자에는 예수님께로 올 힘이 없고, 믿음도 없다. 그러나 중보기도자들이 그를 부여잡고 끝까지 기도한다면 중보기도자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아래의 말씀을 보라.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저희들, 바로 네 사람들의 믿음이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사함을 받았느니라"(마태복음 9 2) 

기도에는 단계가 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를 하게 한 다음에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식이요, 원리이다. 처음에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필요에 의해서 기도하고, 때로는 막연한 기도의 부담을 갖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기도라는 것은 실은 영적세계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기도를 처음부터 깊이하고 영적으로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주의 뜻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처음부터 벌떡 일어나서 걸을 수 없는 것과 일반이다.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팔다리를 움직이고, 후에 뒤척이고, 그 다음에 뒤집고, 그리고 좌우 방향전환을 한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배를 이용하여 기어가기 시작한다. 어린아이가 걷기 위해서 이러한 나름대로 복잡한 과정과 단계가 있다. 기어가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기도를 시작하면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시간은 그렇게 가지 않는지, 목사님은 하루 30분, 때로는 1시간 이상 기도하라고 하는데,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여러번 반복해도 시계를 보면 10분이 채 지나가지 않을 때가 있곤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기도 한다. 믿음이 없어서 믿지 못하고 자꾸 기도하고 기도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심신이 나약해서 의지할데 없는 몸이라 저렇게 기도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서 저렇게 떼를 쓰고 조르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신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하나님의 존귀한 보좌앞에 이르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 할 수록, 기도의 영역은 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의 신비를 알고 실제로 충분한 기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 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는 것이기에 더욱 낮아지고 겸손히 허리를 동이고 늘 엎드려 경배하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기도를 어설프게 하는 사람들이 교만히 걸걸한 목소리를 내면서, '내가 기도 좀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도의 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웬지 모르게 하나같이 자신조차 불행하고 가족과 자녀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론 다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일부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기도는 영적세계, 영적인 영역에 들어가는 것인데, 함부로 하나님의 존전앞에서 법도 없고, 원리원칙도 없이 마구 기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영적활동과 믿음의 행위는 기록된 말씀과 법도, 믿음의 원리와 가르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안에서 사랑과 자유함이 있지만 방종이나 무분별로 빠지게 되면 교만과 무지, 더나아가 오히려 반역과 거역이라는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도제목이 무수하다

   그런데 이시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가족과 자녀, 나의 교회, 이웃 교회, 성도들, 자녀들, 전도대상자들, 나라와 민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기술, 학문, 언론, 방송, 인터넷, 법, 제도, 자연, 역사의 영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교회의 회복과 부흥, 성령과 사랑으로 교회 하나됨을 위해서,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민족의 통일, 열방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모두가 기도해야 한다. 대부분 기도한다고 핍박받고 잡혀서 감옥에 가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 이러한 자유를 놓치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들을 무수히 흘려 보내서는 안될 것이다.

성령을 좇아 기도하라

   늘 제목을 정해 놓고 반복적으로 하는 기도도 있지만, 성령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좇아서 기도해야 하는 기도제목이 있다.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는 경우이다. 성령이 기도하게 하신다. 사실 기도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필요한 것들에서 철저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놓고 기도하게 된다. 나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과 생각이 더 중요하고 가장 최고, 최선의 지혜로운 길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따라 하는 기도보다도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성령께서 시키시는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나의 뜻과 나의 필요가 아니라, 기도의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 자녀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나의 자녀들을 향하여 두신 뜻을 깨닫고 기도하려고 한다. 성도를 위해서도 내가 보는 것으로 판단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영이 주장해서 감동으로 오는 기도를 점차 하게 된다.

기도의 분량을 채우라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위의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내안에, 내가족에, 내교회, 민족과 나라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하신다. 기도의 부담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중에서는 없을 것이다. 기도의 부담이 없을 수 없다. 다른 기도제목을 차치하더라도 나의 영혼을 위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기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평신도들도 하루에 평균 1시간이상은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침식사 할 때 조금, 점심식사 때 조금, 저녁에 취침전에 조금해서 모두 합해서 1시간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중에서 온전히 1시간은 기도를 위해서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하루가 24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의 십일조 2.4시간을 기도를 위해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기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권면이다.

   기도를 무작정 많이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에 따라 기도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사와 사역의 부르심의 차이도 있을 수가 있다. 필자 주변에도 온전한 철야기도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 밤9시 기도해서 밤11시되면 귀가하는 것이 아니고,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새벽기도까지 하고 집에 돌아가는 분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전도의 사명을 받아서 늘 노방전도, 아파트전도, 축호전도, 병원전도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사명을 받았든지, 받지 않았든지 누구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이다. 역설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 기도하지 않고 하루를 그냥 넘기며 사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한다. 대충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닫는 것은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다.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교회의 성장은 단연 기도의 불이 타올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기도소리가 전처럼 들려야 한다. 벌이 왱왱거리듯이 교회에서 주야로 기도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충분히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충분한가? 혹 나를 위해서는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주변을 돌아보라. 영혼의 절규와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온갖 죄악이 범람하고 영혼을 파괴하고, 옥죄고 있는 모습을 보라. 사단의 거센 미혹과 올가미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들을 보라.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동토의 땅, 북한의 절규와 지하교회 성도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온 땅, 온 열방의 민족과 족속들이 복음을 갈급하며 호소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보라. 선교의 전방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며 때로는 순교를 감내하며 싸우고 있는 전도자들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기도하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주께 호소하여 긍휼을 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회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자유와 안락이 나만을 위해서 주어졌는가?

   주님이 말씀하신다.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보통 고난이 오면 기도한다. 고난의 강도에 따라 처음에는 속으로, 점차 큰 소리로, 나중에는 영혼깊이 터져나오는 절규로,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고, 나중에는 금식하며 죽이든지 살리든지 주님께 살려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도를 토대로 세워졌다고 본다. 옛날에 한국교회가 단지 가난하고 못배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에 매진했는가? 결코 아닐 것이다. 신학교도 기도하는 학교이다. 신학공부한다고 기도를 게을리하는 교수나 학생은 아니될 말이다. 강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도가 더 중요하다. 기도를 약하게 하고 쉬게 하는 가르침이나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말씀을 듣고 신학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정리했다면 그마만큼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쉬면 반드시 후회한다. 신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기도의 신비를 알지 못하고 기도의 삶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신학교를 졸업한 그 신학도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크게 걱정이 되고 우려가 된다. 간혹 기도를 게을리하는 젊은 신학생들이 안타깝다. 신학공부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기도와 ! 경중을 따질 만한 것은 없다고 본다.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대로 오셔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기에 뭐 특별히 기도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이라면 그냥 십자가를 맞이하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하속들에게 잡혀서 끌려가실 때, 어디서 잡히셨는가? 무엇을 하다가 잡히셨는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잡혀서 끌려 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늘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 습관을 좇아서 늘 기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는데,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

"저희를 떠나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누가복음 22 41)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방울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 44)

골방에 들어가라

   혹 기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도하셨다. 땀방울이 피방울 떨어지듯이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오늘날 예수님의 기도의 짐을 이어서 나누어 질 사람을 찾고 계신다. 기도할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어서 속히 문을 닫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나는 밖으로 밖으로 나다니고 있지는 않는가? 신앙의 활동과 봉사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시는데, 기도를 할 골방조차 없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단지 사람들은 만나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이나 고독의 문제조차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골방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웃과의 만남이 중요치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소흘히 하고서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 6)

시험에 들지않도록 기도하라

   우리는 종종 어떤 시험에 들어서 한참이나 넘어져서 회복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넉넉히 극복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그만 작은 시험에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일이 꼬이고 건강도 잃고 관계도 엉망이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1)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 36)

능력이 필요하면 기도하라

   우리는 종종 우리의 능력이상의 일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 나의 현재의 능력과 재능으로는 이미 한계상황이다. 좌절의 늪에 점점 빠져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교포들의 자살율이 전보다 높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기도의 비밀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인적인 인내와 인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의 현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여길 때, 절망만을 붙들고 절망을 묵상하지 말고 기도하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 22)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없느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 28~2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 24)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요'라고 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이미 부족한 것을 채울 길을 말씀하셨다. 왜 세상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가?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처럼 스스로 자신 존재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품고 기도를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세상이 부럽고 세상이 더 커보인다면 어떻게 전도를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명확히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 말씀을 하신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누가복음 9 28)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삶을 본으로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말로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기에 뭐 특별히 기도할 것은 없느니라, 그러나 너희들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예수님은 직접 기도하셨다. 때로는 예수님도 예수님의 원하심과 하나님의 원하심이 상충하는듯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오직 하나님의 원하심을 좇아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 우리도 이제 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원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인생, 나의 직장, 나의 사업장, 나의 돈과 명예, 나의 자녀, 나의 권한에 있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만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다시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잔이 내게서 지나갈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마태복음 26 39, 42, 44)

   제자들은 예수님이 늘 기도하신 것을 옆에서 보았기 때문에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단지 기도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이 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하고 정확한 모델이다.

"예수께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 1)

   기도하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중보기도를 받고 있는 그 사람을, 한 나라와 민족이라 할찌라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깊은 절망과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기도하셨다. 어떤 내용인가?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 32)

   기도하면 낙심과 좌절,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도 일으킬 수 있으며, 놀라운 변화와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원수라 할찌라도 관계회복이 이루어지며, 완악하고 강팍한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 진다. 바로 기도를 통하여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