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용 장로의 건강한 영적 삶을 위하여
작년 이맘 때의 일이다. 당시에 필자는 교수로 재직 당시에 강의실 앞자리에 앉는 학생들을 예배당의 앞자리에 앉는 성도들에 비유하여 배움과 은혜 받는 양에 대하여 글을 쓴적이 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늘 앞자리에 앉는 것이 버릇이 되어 어쩌다가 다른 교회를 방문하여 중간 자리나 뒷자리에 앉게 되면 거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앞자리에 익숙한 나였기에 독자 여러분들에게 앞자리에 앉아 축복의 기회를 잡으라고 권고한 글이었다..
필자가 예배 때 마다 앞자리에 앉는 이유는 설교에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굳이 또 다른 이유를 들라면 성가대의 찬양을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들을 수 있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늘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는데 약 두달 전부터 귀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금요 예배나 주일 예배 때에 찬양대나 찬양 인도팀이 찬송가를 인도하는데 앞자리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악기와 찬양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귀속의 고막이 마치 찢어진 것처럼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고 귀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잠시만 참으면 괜찮겠거니---“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계속 앉아 있었지만 나중에는 귀의 통증 때문에 휴지 조각으로 한쪽 귀를 막고 예배를 드려야만 했었다.
지난 주일에 귀의 통증으로 인해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여서 이번 주는 아예 예배당의 마지막 끝자리로 옮겨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필자는 늘 강대상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을수록 예배에 집중이 잘 되고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번에 맨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또 다른 예배 분위기를 접할 수가 있었다. 마치 눈앞의 큰 나무만 보다가 멀리서 숲 전체를 바라보는 것 처럼 앞자리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예배의 면모를 살필 수 있어 좋았다.
앞자리에 앉았기에 보지 못했던 뒷자리 성도들의 예배 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뒷자리가 아닌 윗자리의 하나님 편에서 내려다 보면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보았다. 사실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면 마치 설교자와 일 대 일의 관계로 만나는 것 같아 개인 교수를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마치 큰 방안에서 하나님과 독대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필자는 이런 예배 분위기 속에서 나만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는데 뒷자리에 앉으면서 부터 예배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큰 무리의 일원으로 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훨씬 더 은혜롭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이민와 살고 있는 이곳 미국 땅이 하나님을 바라는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져 통치되어 내려 오다가 우리 세대에 이르러 이제는 교회 안에서 조차 동성애를 지지하고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가정이 파괴되는 등, 하나님의 법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아타까워도, 미국이 닥치는 위기 때 마다 대통령에 의해 전 국민에게 선포되는 기도 요청을 보면서 아직도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독교인들과 또 이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피부로 체험 하면서 대중 기도, 온 국민이 함께하는 공중 예배의 힘을 알 수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 곳곳에서 터지는 지진, 홍수, 가뭄, 해일등의 자연재난, 나라와 나라들 사이의 전쟁소식들의 빈도가 점점 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 때가 임박한 것 같다. 천국을 가려고 해도, 또한 구원을 받으려 해도, 혼자만 받으려고 노력하지 말자. 이웃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도와 선교에 힘을 써, 온 교회와 이웃들이 함께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